카네이션 이야기
link  관리자   2024-07-09



제우스신에게 바치던 꽃인 카네이션의 지위가 어떻게 이렇게 땅에 떨어졌을까?
패랭이꽃 속 300여 종의 꽃 중 하나인 카네이션의 원산지는 지중해이지만, 재배 역사가 길어 기원을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15세기에는 북유럽 정원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그때부터는 과거를 되돌아보지도 않았다.

카네이션은 나쁘게 말해 갖가지 주름과 줄무늬를 지닌 잡종을 쉽게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다양한 카네이션을 수집했던 귀족과 카네이션을 기르고 전시했던 플로리스트만큼 ‘괴물 같은 자손‘인 카네이션을 높이 평가한 사람도 없었다.

플로리스트가 오늘날에는 꽃을 파는 사람을 뜻하지만, 17세기에서 19세기 말에는 꽃 애호가 아마추어 장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방직공 중에는 전시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특별한 품종의 꽃을 키우는 사람이 많았다. 앵초, 튤립과 히아신스도 모두 인기가 많았지만 흰색 바탕에 한 가지 색 줄문늬, 가장자리만 짙은 색깔 등 카네이션만큼 다양한 종류를 갖춘 꽃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식물 번식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밝혀지기 전부터 시작되었고, 대개 우발적인 결합이나 환경 요인의 능숙한 조작으로 다양한 품종이 생겨났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일 뿐이고, 인위적으로 결합하면 어떤 품종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칼 폰 린네가 1735년에 대담하게 제시했다)이 받아들여지면서 18세기 식물혁명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뚜렷하게 다른 두가지 품종을 결합해 맨 처음 인위적으로 잡종을 만들어내고 기록을 남긴 꽃이 카네이셔니기 때문이다.

1717년에 토머스 페어차일드는 런던의 묘목업자가 수염패랭이꽃의 수술 꽃가루를 카네이션의 암술로 옮겨 ’어느 쪽과도 같지 않은 식물‘을 만들어내면서 창조주역할을 했다. 칼폰 린네가 을 출판하면서 식물의 명명법 그리고 꽃의 수술과 암술 수에 따라 분류하는 체계를 확립하기 30여 년 전이었다.

’페어차일드의 노새‘라고 불리는 잡종 카네이션 표본 두 개는 옥스퍼드대학교의 식물표본 상자와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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